
로또 1등에 당첨되면 뭘 할지 가끔 상상해보신 적 있으신가요. 저는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상상이 단순한 몽상이 아니라, '그 돈을 어떻게 굴릴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으로 바뀌었습니다. 목적 없이 쌓인 돈만큼 쉽게 사라지는 것도 없다는 걸, 한 어르신의 이야기를 들으며 다시 한번 실감했습니다.
월세 1,200만 원에서 국민연금 140만 원으로, 80억 손실의 실체
72세인 5석 씨는 분당에 거주하며, 건설업계에서 25년간 공무(工務) 관리직으로 일했습니다. 공무란 건설 현장의 시공·공정 관리를 총괄하는 직무로, 분양 업무까지 겸하면 부동산 흐름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자리입니다. 퇴직 당시 연봉은 약 8천만 원. 수십 년간 부동산 간접 투자를 병행하며 월세 1,200만 원이 나오는 건물을 포함해 상당한 자산을 일궈뒀습니다.
그런데 62세에 정년퇴직을 하고 나서, 경제적 불안보다 더 크게 밀려온 것이 있었다고 합니다. 바로 '할 일이 없을 것 같다'는 막막함이었습니다. 이 심리적 공백이 결국 잘못된 선택의 출발점이 됩니다.
주변의 권유와 '아직 젊으니 일해야 한다'는 분위기에 떠밀려 뛰어든 것이 부동산 시행 사업이었습니다. 부동산 시행(project development)이란 토지 매입부터 인허가, 분양, 준공까지 전 과정을 직접 기획하고 책임지는 사업 방식입니다. 시공사에 도급을 맡기는 것과 달리, 사업 주체가 모든 리스크를 끌어안는 구조입니다. 5석 씨는 직장에서 다른 사람들이 이 방식으로 돈을 버는 걸 곁에서 봐왔기에 자신도 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다고 했습니다.
제가 이 부분에서 솔직히 가장 뜨끔했습니다. 저도 비슷한 심리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공부하고 분석하면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 그게 과신(過信)이 되는 순간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조차 모르게 됩니다.
결과는 5년 만에 전부 잃는 것이었습니다. 시행 사업 과정에서 지인에게 자금을 빌려주거나, 연쇄적인 금전 사기 피해까지 겹쳐 총 80억 원가량이 사라졌습니다. 월세가 나오던 건물도, 다른 부동산 투자금도 전부였습니다. 현재 그가 받는 국민연금은 월 140만 원. 그중 100만 원 미만으로 생활비를 충당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이 특수한 사례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23년 한 해 동안 60대 이상 피해자가 전체 금융 사기 피해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에 육박합니다(출처: 금융감독원). 퇴직금을 수령한 직후가 가장 취약한 시기임은 통계로도 확인됩니다.
노후 자산 보호를 위해 실제로 알아야 할 것들
5석 씨가 모든 걸 잃고 가장 먼저 느낀 건 돈을 잃었다는 사실보다, 평생 쌓아온 것들이 무너지는 박탈감이었다고 합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를 받을 만큼 힘든 시간을 보냈고, 가장 먼저 곁을 떠난 건 가장 가까운 가족이었다고 담담하게 회고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서예와 산책으로 하루를 채우며, 술을 멀리하고 고민을 내려놓는 연습을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가 퇴직을 앞둔 분들에게 남긴 조언은 제가 보기에 굉장히 현실적입니다.
- 퇴직 후 창업이나 재투자는 최소 1년은 보류할 것
- 조직 내에서 쌓은 전문성이 시장에서 그대로 통한다는 착각을 버릴 것
-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하기 전에 주변의 권유에 끌려가지 말 것
저는 여기에 하나를 더 얹고 싶습니다. 자산 보호 관점에서 퇴직 후 자금은 유동성(liquidity)과 안전성을 최우선으로 설계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유동성이란 필요할 때 즉시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의 성질을 말합니다. 부동산 시행처럼 장기 프로젝트에 자금을 묶어버리면, 중간에 문제가 생겨도 빠져나올 수 없는 구조가 됩니다. 5석 씨의 사례가 정확히 그랬습니다.
또한 사기 피해 측면에서도 구분해야 할 개념이 있습니다. 바로 원금 보장형 상품과 수익률 보장형 상품의 차이입니다. 수익률 보장(guaranteed return)이란 약속된 수익을 반드시 지급하겠다는 조건인데, 합법적인 금융 상품에서 이를 명시적으로 보장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연 20% 확정 수익"이라는 말을 들었다면, 그건 사기일 가능성이 높다고 봐야 합니다. 저도 직접 이런 제안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의 불편한 느낌을 믿길 잘했다 싶습니다.
한국소비자원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은퇴 전후 세대를 타깃으로 한 투자 사기는 지인 네트워크를 통해 유입되는 경우가 전체의 60% 이상을 차지합니다(출처: 한국소비자원). 가장 믿는 사람에게서 시작되기 때문에 의심 자체가 어렵다는 점이 구조적 취약성입니다. 5석 씨도 지인을 통해 연쇄적인 금전 피해를 입었다고 했으니, 이 통계가 그냥 숫자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30대에 노후 설계를 지금 당장 시작하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 5석 씨는 오히려 젊을 때는 하루하루 충실하게 살면 노후는 자연스럽게 흘러간다고 했습니다. 처음엔 의아했지만, 맥락을 보면 이해가 됩니다. 미래를 과잉 설계하다가 오히려 섣부른 투자로 뛰어드는 게 더 위험하다는 경고입니다. 제가 직접 투자 공부를 하면서 느끼는 것도 비슷합니다. 어설픈 확신이 무지보다 더 위험할 때가 있습니다.
퇴직 이후 삶을 어떻게 설계할지, 결국 그 기준은 '얼마를 불릴 것인가'보다 '얼마를 지킬 것인가'에 있다는 걸 이 이야기에서 배웠습니다. 투자 공부를 계속하고 있지만, 동시에 돈을 잃지 않는 법도 함께 공부해야 한다는 걸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됩니다. 퇴직 전후에 큰돈이 생겼다면, 먼저 1년은 그냥 놔두는 것도 전략입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금융 또는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