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저는 꽤 오랫동안 '부자'라는 단어를 잘못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수백억 자산가나 강남 빌딩 주인 정도는 돼야 부자라고 여겼고, 그 기준에 한참 못 미치는 제 상황을 보며 '어차피 나는 아니겠지'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최근 자료들을 들여다보니, 부자의 기준과 그 경로가 제가 생각했던 것과 꽤 달랐습니다.
K-에밀리, 우리가 몰랐던 부자의 기준
K-에밀리(K-Emily)라는 개념을 처음 접했을 때 솔직히 낯설었습니다. 여기서 에밀리란 '에브리데이 밀리어네어(Everyday Millionaire)', 즉 평범한 일상 속에서 부자가 된 사람들을 뜻하는 말입니다. 수천억 자산가가 아니라, 자산 100만 달러에서 500만 달러, 우리 돈으로 약 15억에서 75억 원 사이에 있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하나금융연구소의 보고서에 따르면, 이 K-에밀리에 해당하는 사람이 국내에 현재 50만 명에 육박합니다(출처: 하나금융연구소). 인구 100명 중 1명, 가구 기준으로는 40가구 중 1가구 꼴입니다. 스위스 크레디트의 글로벌 웰스 리포트(Global Wealth Report)에서도 같은 자산 구간에 해당하는 에밀리들이 2000년대 이후 전 세계적으로 4배 이상 늘어 현재 약 5,200만 명에 달한다고 밝혔습니다. 여기서 글로벌 웰스 리포트란 전 세계 개인 자산 규모와 분포를 추적하는 연간 보고서로, 국제 금융계에서 공신력 있는 지표로 활용됩니다.
저는 이 수치를 보면서 두 가지 감정이 동시에 들었습니다. 하나는 '생각보다 가능한 일이구나'라는 작은 희망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럼 나는 지금 어디 서 있나'라는 솔직한 자기 점검이었습니다. K-에밀리의 평균 연령이 51세이고, 최근 5년 내 부자 반열에 오른 사람 중 절반 이상이 50대 이하라는 점도 인상적이었습니다. 40대 이하 젊은 층도 4분의 1을 차지한다는 사실은, 더 이상 부는 60~70대 고령층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신호로 읽혔습니다.
종잣돈, 저축으로 시작했다는 불편한 진실
"저축으로는 부자가 될 수 없다"는 말을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저도 한동안 그렇게 믿었고, 예적금 통장보다 주식 계좌를 먼저 열었던 시절이 있습니다. 그런데 K-에밀리들의 부의 출발점을 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이들이 종잣돈을 마련한 방법 1순위는 예적금이었습니다. 평균적으로 약 8억 5천만 원의 종잣돈을 스스로 모았고, 응답자 절반은 1억에서 3억 원 사이의 종잣돈부터 시작했다고 답했습니다. 여기서 종잣돈이란 투자나 자산 형성의 첫 기반이 되는 초기 자본을 의미합니다. 투자 전문가들이 흔히 말하는 '시드머니(Seed Money)'와 같은 개념입니다.
K-에밀리들의 자산 형성 과정을 단계별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저축과 예적금을 통한 초기 종잣돈 확보
- 본업 성과를 통한 소득 인상 및 파이프라인 다각화
- 충분한 학습 이후 주식·부동산 등 투자 자산 편입
- 소비 절약을 유지하면서 저축성 자산과 투자 자산을 54대 46 비율로 배분
워렌 버핏이 강조한 지속적인 저축(Continual Savings)의 원칙과 정확히 맞닿아 있는 경로입니다. 저는 이 순서를 보면서 제가 순서를 거꾸로 가고 있었다는 걸 인정하게 됐습니다. 종잣돈도 제대로 모이지 않은 상태에서 투자 수익부터 기대했던 것이죠.
자산형성을 가로막는 소비 습관의 민낯
주변을 보면 부자가 되고 싶다는 말을 가장 자주 하는 사람이 소비를 가장 많이 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저도 그 범주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다고 자신하기 어렵습니다. SNS에서 누군가의 플렉스를 보면 조금씩 욕구가 생기고, 멀쩡한 물건인데도 새것으로 교체하고 싶은 충동이 드는 경험은 누구나 한 번쯤 있을 겁니다.
반면 K-에밀리들의 소비 패턴은 꽤 다릅니다. 부자가 된 이후에도 소득의 절반 정도를 대출 상환과 저축에 사용한다고 합니다. 한 40대 K-에밀리 여성의 인터뷰를 보면, 화장품을 살 때 올리브영 대신 백화점을 이용하는 정도의 변화는 있지만 소득의 3분의 1 수준만 실제 소비에 쓴다고 했습니다. 자산형성이란 단순히 돈을 버는 문제가 아니라, 번 돈을 어떻게 다루느냐의 문제라는 걸 이들의 소비 방식이 잘 보여줍니다.
부자가 되고 싶은 마음이 클수록, 그 목표가 좌절됐을 때 무너지는 사람들도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봅니다. 카드 빚이 쌓여 있는데도 여행과 유흥에 지출을 이어가다 결국 빚더미에 괴로워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목표 자체가 너무 막연하고 크기 때문에 반동도 크게 오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자산관리(Asset Management)의 첫 단계는 거창한 투자 전략이 아니라 소비를 통제하는 능력임을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여기서 자산관리란 개인이 보유한 금융 자산과 실물 자산을 효율적으로 운용하고 증식시키는 일련의 행위를 말합니다.
금융투자로 이동하는 부의 방향
전통적으로 부자라 하면 부동산 자산가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K-에밀리, 특히 젊은 층의 투자 방향은 이미 달라지고 있습니다. 일반 부자들에 비해 K-에밀리들이 금융투자를 선호하는 비율이 5% 이상 높았고, 새로운 투자 유형이 등장하면 적극적으로 접근하는 성향도 강한 편입니다.
여기서 포트폴리오 다각화(Portfolio Diversification)라는 개념이 자연스럽게 등장합니다. 포트폴리오 다각화란 자산을 한 종류에 집중하지 않고 여러 자산군에 분산 배치해 위험을 줄이는 전략을 말합니다. 그런데 K-에밀리들은 무작정 분산하기보다는 충분히 공부한 분야에 집중 투자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해당 분야를 충분히 이해하고 진입하되, 레버리지(빚투) 보다는 자기 자본을 활용한다는 원칙을 지키는 것이죠.
국내 가계금융복지조사 기준으로 보면 일반 가구 대비 K-에밀리 가구의 금융 자산 비중이 뚜렷하게 높게 나타납니다(출처: 통계청). 이 흐름이 이어진다면 향후 부동산 시장의 수요 구조에도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부동산만이 정답"이라는 시각도 있지만, 실제 데이터가 가리키는 방향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재테크 경로는 결국 K-에밀리들이 걸어온 길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본업에서 실력을 키워 소득을 높이고, 그 소득을 절약과 저축으로 지키면서, 공부한 만큼만 투자에 나서는 것. 화려하지 않지만 그래서 오래 지속할 수 있는 방식입니다.
결국 '부자가 되고 싶다'는 목표 자체가 너무 막연한 게 문제일 수 있습니다. 저도 그 막연함 앞에서 여러 번 흔들렸습니다. 하지만 목표를 구체화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당장 가족과 함께 밥 먹고 여행 한 번 가는 데 돈 걱정 안 해도 될 정도, 그 수준부터 설계하고 한 걸음씩 실천하다 보면 어느 순간 K-에밀리의 출발선에 서 있을 수도 있습니다. 오늘 통장 잔액보다 오늘의 습관이 더 중요한 이유가 거기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금융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 투자 결정은 반드시 본인의 판단과 책임 하에 이루어져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