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집이 있으면 노후가 든든하다고 생각하셨나요? 저도 한때 그렇게 믿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노년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그 믿음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자산은 있는데 생활비가 없는, 그 기묘한 상황이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아버지의 노후가 제게 남긴 질문
아버지는 직장도 여러 곳을 다니셨고, 한때는 자영업도 하셨습니다. IMF 외환위기가 그 모든 것을 바꿔놓았습니다. 사업을 접고 나서는 주식투자에 매달리셨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게 노후를 더 어렵게 만든 결정적인 분기점이었습니다.
그때 느낀 건 단순한 가족 걱정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노년을 반면교사 삼아, 제 노후는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꽤 오래 공부하게 됐습니다. 그 과정에서 가장 먼저 마주한 개념이 바로 유동성(liquidity)이었습니다. 유동성이란 자산을 필요할 때 즉시 현금으로 전환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부동산은 가격이 아무리 높아도 당장 생활비로 쓸 수 없다는 점에서, 유동성이 극히 낮은 자산에 해당합니다.
한국 노년층의 자산, 숫자로 보면 달라 보입니다
통계청의 2024년 가계 금융복지 조사에 따르면, 60대 이상 가구의 총 자산은 평균 5억 8,251만 원에 달합니다(출처: 통계청). 그런데 이 중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무려 81.2%입니다. 통장에 실제로 갖고 있는 금융자산은 9,258만 원 수준에 불과합니다.
더 현실적인 숫자도 있습니다. 70대 고령 가구의 42%는 저축액이 1,000만 원 미만이고, 1,000만 원 이상 3,000만 원 미만인 경우가 22.3%입니다. 즉, 70대 열 가구 중 여섯 가구 이상은 저축액이 3,000만 원을 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저축액이 1억 원을 넘는 경우는 12.3%에 그쳤습니다.
제가 직접 이 수치를 찾아봤을 때 솔직히 예상 밖이었습니다. 주변에 집 한 채씩은 다들 있다는 말을 들으면서, 노년이 그렇게까지 빠듯하리라고는 실감하지 못했거든요. 이것이 바로 자산 포트폴리오(asset portfolio) 편중의 문제입니다. 자산 포트폴리오란 개인이 보유한 자산의 종류와 구성 비율을 의미하는데, 한 곳에 지나치게 쏠린 구성은 위기 상황에서 유연하게 대응하기 어렵게 만듭니다.
노후 자산 현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60대 이상 가구 평균 총 자산 약 5억 8,251만 원 중 부동산 비중 81.2%
- 70대 가구의 42%는 저축액 1,000만 원 미만
- 저축액 1억 원 이상인 70대 가구는 전체의 12.3%
부동산 불패 신화와 '돈맥경화'의 함정
집이 자산을 불려주는 수단이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대출을 받아 내 집 마련을 하고, 평수를 넓히면서 중산층이 된 분들이 실제로 많습니다. 아파트 분양이 재테크의 정석처럼 여겨지던 시절을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되는 흐름입니다.
문제는 노후에도 그 방식이 통하느냐는 겁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부동산은 시세차익(capital gain)을 기대할 수 있는 자산이지만, 시세차익이란 자산을 매각했을 때 발생하는 이익으로 실제로 팔기 전까지는 생활비로 연결되지 않습니다. 강남에 수십억짜리 아파트를 갖고 있어도 당장 이번 달 생활비가 부족하다면, 그건 말 그대로 '돈맥경화' 상태입니다.
여기에 현 정부의 보유세 강화 기조가 겹치면 이야기는 더 복잡해집니다. 보유세란 부동산을 소유하는 것만으로 매년 납부해야 하는 세금으로, 종합부동산세와 재산세가 대표적입니다. 젊은 세대든 70대 노령 인구든 가리지 않고 세 부담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고정 소득이 없는 노년층에게 이 부담은 생각보다 훨씬 크게 다가옵니다.
부동산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로는 부동산 불패에 대한 오랜 믿음도 있지만, 자식에게 집을 물려줘야 한다는 과도한 의무감도 큰 몫을 합니다. 그 의무감 때문에 정작 본인의 생활이 팍팍해지는 경우를 주변에서 여럿 봤습니다.
현금 흐름이 답이라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그렇다고 집을 무조건 팔아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거주할 집 한 채가 없는 노년이 오히려 더 비참할 수 있습니다. 전세 매물은 줄어들고 월세 비중이 날이 갈수록 높아지는 추세를 보면, 집 없이 맞이하는 노년의 주거비 부담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제가 보기에 현실적인 방향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젊을 때부터 현금 흐름을 만드는 자산을 함께 키워가는 것입니다. 배당주 투자나 개인연금이 대표적입니다. 개인연금이란 국민연금 외에 개인이 별도로 가입하는 연금 상품으로, 세액공제 혜택과 함께 노후에 매달 일정 금액을 수령할 수 있어 생활비 공백을 채우는 데 효과적입니다. 다른 하나는 이미 부동산 편중 상태에 놓인 중장년층을 위한 주택연금 제도의 개편입니다.
주택연금이란 보유 주택을 담보로 맡기고 사망할 때까지 매달 연금을 수령하는 제도로, 한국주택금융공사가 운영하고 있습니다(출처: 한국주택금융공사). 집을 팔지 않고도 거기서 살면서 매달 생활비를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집 한 채에 자산이 묶인 분들에게 현실적인 선택지가 될 수 있습니다. 다만 현재의 주택연금 수령액 수준이나 가입 조건이 더 유연해진다면, 이 제도를 선택하는 시니어가 훨씬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노후 대비 정책이 아닐까 싶습니다.
결국 노후에 필요한 건 화려한 자산 규모가 아니라, 다달이 들어오는 현금 흐름입니다. 지금 은행 대출을 다 갚고 나면 70대에 실제로 쓸 수 있는 돈이 얼마인지, 한번 구체적으로 계산해보시길 권합니다. 그 숫자가 생각보다 작다면, 지금이 바로 포트폴리오를 다시 들여다볼 시점입니다. 배당주든 개인연금이든, 매달 꼬박꼬박 들어오는 돈을 만들어두는 것이 어떤 부동산보다 든든한 노후의 버팀목이 될 수 있습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금융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 구체적인 자산 운용은 반드시 전문 재무상담사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